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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의 갈기
한양대는 과거 KBO리그의 원년 도루왕인 김일권을 비롯해 장효조, 천보성, 김기덕 등 수없이 나열해도 부족할 만큼 많은 스타 선수를 배출했고 우리나라 최초 메이저리거 박찬호 또한 한양대 출신으로 명문 대학야구의 살아 있는 역사다. 올해 주전 선수들의 부상으로 인한 이탈로 이 대신 잇몸으로 전력을 다했던 한양대 야구부. 그런데도 대통령기 전국대학야구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야구 명문이란 수식어를 굳건히 지켜냈다. 깊은 전통을 이어나가기 위해 날카롭게 갈기를 세운 사자들을 만나보자.
에디터 이예랑 사진 한국대학야구연맹(KUBF), 하성준 기자
#갈기를 펼쳐봐
한양대학교는 1946년 해방 직후 조선대학야구연맹에 최초 창설된 4개 팀(한양대, 동국대, 서울대, 성균관대) 중 하나로 대학야구의 시대를 개막한 장본인이다. 각종 대학야구대회와 성인 야구대회에서 총 36번의 우승을 기록했으며 과거 프로 출범 이전 대학야구, 실업팀 등 모든 야구팀이 참가했던 백호기 종합야구선수권대회에서 총 3번 우승한 유일무이한 성적을 보유하고 있다. 깊은 역사와 전통을 가진 한양대 야구부는 과거 프로팀의 출중한 스타 선수들을 배출했으며 한국 최초 메이저리거인 박찬호도 한양대학교 재학 중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최근 삼성 라이온즈 투수 최채흥도 한양대 출신으로 2020시즌 좋은 모습을 보이며 삼성의 미래라는 호평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야구의 강자라는 수식어는 산실(散失)된 것일까. 최근 대학별 팀 수준이 평준화되고 오히려 4년제 대학보다 전문대 야구부의 전력이 보강되는 현상을 보인다. 한양대 또한 과거 붙어온 수식어와는 다르게 각 대회에서 기량을 뽐내지 못 하고 있다. 또한, 2020시즌에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핵심 선수의 이탈과 부상으로 대통령배에서는 단 13명의 선수로 경기를 치르기도 했다. 2017년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의 정책에 따라 수년간 왕십리에 자리했던 야구부는 안산의 에리카 캠퍼스에 새 둥지를 트게 됐다. 하지만 급하게 시작된 ‘안산 살이’는 좀처럼 쉽지 않았다. 오래된 전통이 무색할 정도로 전용 야구장도 없는 소위 찬밥 신세로 제대로 된 실내 연습장도 없어 안산시에서 운영하는 흙 구장을 임시방편으로 사용하고 있는 한양대 선수들은 어쩌면 과거의 전통을 잇지 못 한 이유가 분명해 보인다. 한양대는 과연 사자의 갈기처럼 전통의 위엄을 보여줄 수 있을까. 악재 속 피어난 꽃들을 만나보자.
#한양대의 유망주들
전인철
출생 1999.07.21 신체조건 183cm / 90kg 출신학교 대구 대구중-북일고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좌타
2020년 성적
평균자책점 |
WHIP |
경기 |
승 |
패 |
이닝 |
4사구 |
탈삼진 |
2.93 |
1.06 |
11 |
2 |
1 |
40 |
20 |
30 |
스카우팅 리포트
2018년도 한양대 입학 후 1학년이지만 많은 경기를 소화해왔다. 18년도 전국대학야구선수권대회에서 2점대 방어율을 기록하고 2경기 승리 투수도 거머쥐며 저학년 때부터 에이스의 면모를 보여줬다. 올해 U-리그 왕중왕전 4강전 선발로 등판해 에이스로서 역투를 보였다. 1년의 공백기와 줄어든 경기 수 때문에 힘들었지만, 한양대에 없어선 안 될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이준재
출생 2000.09.26 신체조건 191cm / 100kg 출신학교 경기 소래중-라온고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2020년 성적
평균자책점 |
WHIP |
경기 |
승 |
패 |
이닝 |
4사구 |
탈삼진 |
2.88 |
1.06 |
8 |
3 |
1 |
24.2 |
19 |
24 |
스카우팅 리포트
한양대학교 입학 첫해인 2020년 대통령기 전국대학야구대회 감투상 수상자이며 준우승에 그쳤지만 최근 영남대, 동의대와의 경기에서 8이닝 무실점 호투로 승리 투수를 거머쥐었다. 지난 2019년 고교야구 주말리그 우수 투수상을 수상했으며 저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선발 한자리를 꿰찬 유망주다.
이현준
출생 2001.04.20. 신체조건 183cm / 80kg 출신학교 경기 금룡중-비봉고 포지션 유격수 투타 우투우타
2020년 성적
경기 |
타율 |
타수 |
안타 |
홈런 |
타점 |
득점 |
출루율 |
장타율 |
OPS |
17 |
0.387 |
62 |
24 |
0 |
15 |
11 |
0.480 |
0.532 |
1.012 |
스카우팅 리포트
차세대 장타 유격수로 떠오르는 선수다. 1학년이지만 강한 어깨와 타격 시 강한 힘으로 장타를 만들어내며 팀 내 타점 머신으로 활약 중이다. 비봉고 재학시절 고교야구 주말리그 도루상을 수상했으며 U-리그 A조에서 타율 0.438에 도루 6번을 성공하며 빠른 발에 장타력까지 겸비한 선수다.
이민영
출생 2000.09.13 신체조건 179cm / 80kg 출신학교 충북 세광중-대전제일고 포지션 외야수 투타 우투우타
2020년 성적
경기 |
타율 |
타수 |
안타 |
홈런 |
타점 |
득점 |
출루율 |
장타율 |
OPS |
15 |
0.156 |
32 |
5 |
1 |
3 |
2 |
0.250 |
0.313 |
0.563 |
스카우팅 리포트
대통령배 결승전 티켓을 따온 장본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선수다. 핵심 선수들의 이탈로 단 13명이 참가했던 경기에서 명품 송구를 보여줬다. 스스로 장점을 힘이라 꼽을 만큼 외야 송구에 대한 자신감도 남달랐다. 타격은 다소 아쉬운 성적이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명품 내야수의 면모를 충분히 뽐냈다고 평가된다.
#김기덕 감독과 일문일답
모교에서의 지도자 생활을 15년째 하고 있다. 맡게 된 계기와 소감이 궁금하다. (12월 2일 인터뷰)
프로 은퇴를 하고 SK 와이번스에서 3년 동안 코치 생활을 했다. 재활 코치도 하고 2군에서도 코치를 맡았는데 생각보다 환경이 많이 열악했다. 힘든 와중에 당시 감독이었던 천부승 감독이 모교에서 마침 수석 코치를 구하던 중 연락이 닿아 SK 구단과 상의 끝에 맡게 됐다. 한양대 재학 시절 모교의 지도자가 될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 한 기회고 화려한 동문도 많은데 내가 그 자리를 맡게 돼서 선수들을 선배처럼 좋은 선수로 지도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지만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임하게 됐다.
에리카 캠퍼스로 이전되며 새로운 환경에서 코치가 아닌 감독으로 야구부를 이끌기 시작했다. 현재 시작과 달리 야구 환경은 개선됐는지 궁금하다.
처음 이전했을 때 야구 인프라와 같은 환경 문제가 제일 힘들었다. 정부의 방침대로 선수들의 학습권이 우선돼야 한다는 정책 때문에 갑자기 이전하게 됐다. 원래 한양대 전용 구장이 경기도 퇴계원에 자리 잡고 있는데 거리가 너무 먼 데다가 선수들 수업이 오후 5시쯤 끝나 현실적으로 애로사항이 많다. 현재로는 학교와 동문과 협의 끝에 야구장 건립을 추진하고 있으나 4년 동안 실질적인 야구장, 실내 연습장이 없는 상태다. 연습 인프라가 너무 좋지 않아 선수들에게 제일 미안하다. 그래도 열악한 환경 속 마지막 대회에서 준우승했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개인 연습으로 기량을 다져준 선수들에게 아주 고맙다. 현재는 웨이트 시설과 체육관밖에 없는 상태고 안산공고에 가서 실내 연습장을 빌려 쓰고 있다. 일반 학생과 비교하자면 강의실이 없는데 수업하는 처지다. 학교에서는 안산도시공사에서 사용하고 있는 일반 생활 체육 야구장 대여를 지원하고 임시로 4년째 사용 중이다.
한양대 야구부의 훈련 방법은?
기본적인 훈련이 제일 중요하다.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몸에 익숙하게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반복적 훈련을 위해서는 체계적인 환경이 갖춰져야 하는데 사실 시간적으로나 장소적인 부분이 매우 부족하다. 또, 선수들 개개인이 수업이 끝나는 시간이 달라서 야구가 단체 운동임에도 단체 훈련을 할 시간이 적다. 그래도 전화위복으로 선수들을 소수로 모아 지도해 줄 수 있다. 맨투맨처럼 집중적으로 붙잡고 알려줄 수 있고, 선수로선 더 직접적인 지도를 받고 질문하는 시간을 마련할 수 있다는 좋은 점이 있다. 팀플레이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적어 아쉽지만, 앞으로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 개인훈련을 더 강화해나갈 예정이다.
감독님의 지도 철학은?
지도자로 15년 동안 지내며 선수들을 보니 졸업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선수들이 대다수다. 학교에 다니면서 프로 지명을 받지 못 할 경우를 충분히 대비해야 하니 그런 뒷받침을 많이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학교는 매년 일본으로 전지훈련을 하러 가는데 일본에 도착하면 일본어만 사용하도록 지도한다. 아침 인사도 일본어로 하고 웬만한 일상생활에서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든다. 이처럼 반복적으로 다른 환경에 노출되다 보면 나중에 야구가 아닌 다른 길도 자연스레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야구도, 공부도 겸비할 수 있는 선수를 만드는 것이 나의 지도 철학이다.
지도자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다면?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우승이다. 근데 15년 있는 동안 두 번밖에 우승을 못 했다. 그것도 코치일 때라. (웃음) 근데 요즘은 선수들이 진로를 잘 찾아 졸업하는 것이 우선이고 더 좋은 일 같지만, 그래도 경기 중엔 우승한 경기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현재 삼성에서 뛰고 있는 최채흥이 1학년일 때 광주에서 대통령배가 열렸다. 첫 게임 상대는 약팀이라 평가받는 서울대였지만 쩔쩔매며 간신히 이긴 기억이 있다. 당시 코치였는데 감독님께 혼난 선수들을 뒤에서 보듬어주며 잘해보자 격려해줬고 남은 경기를 쉽게 풀어나갔다. 생각지도 못 한 우승이라 제일 기억에 남는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고 있다.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대학 리그는 현재 경기 수가 매우 적다. 학습 보장권, 선수 휴식 보장 등과 같은 이유로 경기가 많이 줄었다. 정작 선수들은 프로 입단을 꿈꾸고 있는데 기량을 보여줄 기회를 축소하니까 힘들었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이미 적은 경기가 더욱 축소돼서 너무 안타깝고 힘들었다. 또, KBO리그 사정도 힘들어 올해 신고 선수 인원도 대폭 감소해 남겨진 4학년 선수들이 갈피를 잡지 못 하고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
대학야구의 활성화 방안은?
과거처럼 유명 스타들이 배출돼서 학교 홍보도 해주는 그런 순기능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 해 학교 측에서도 살갑지 않은 현실이다. 제일 중요한 부분은 대학야구가 매스컴에 노출되는 수가 매우 적다는 것이다. 제일 큰 대회인 대통령배마저도 스포츠 뉴스 면에 기사가 올라오지 않는 현실이다. 횡성에서 했는지, 대회를 했는지 그 누가 알 노릇인가. 과거엔 모교 학생들이 와서 경기 응원도 하고 학생들이 먼저 야구에 관한 관심도 보였는데, 지금은 학교 학생들조차 야구부가 있는지 모를 것이다. 일차적으로 야구 협회와 함께 대학야구가 살 수 있도록 똘똘 뭉쳐야 하는데 쉽지 않다. 팀이 성적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들 머리를 싸매고 대학야구를 살릴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얼리 드래프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얼리 드래프트에 찬성했다. 현재 대학 감독끼리 이야기를 나누면서 얼리 드래프트가 시행되고 어쩌다 좋은 선수가 나와서 팀 전력을 잃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그 선수가 4학년까지 좋은 기량을 펼칠지 그렇지 않을지는 모르는 사실이니까. 본인 기량이 가장 뛰어난 시기에 선수를 밀어주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라 생각한다.
대학야구 선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서운해하지 말고 들었으면 좋겠다. 프로를 가는 건 너무 힘들고 프로에 가도 힘든 게 현실이다. 확률적으로 프로에 가는 선수보다 그렇지 않은 선수가 많기 때문에 강의를 열심히 듣고, 학창 시절에 누리지 못 한 학교생활도 누리고 교수님과도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야구를 잘해서 프로에 가는 것도 좋지만, 내가 영어 교육과에 입학해서 야구 말고 새로운 걸 배우니 너무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대학 선수들도 동아리 활동, 다른 공부 하면서 새로운 길도 볼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미팅도 가고 MT도 가고 다른 학생들처럼 다 즐겨보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꼭 찾길 바란다.